슈퍼맨이라 불린 잠수사의 마지막 이야기
최경
발행일 2016.07.29. 16:45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33)
그에게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울먹이며 한 말 때문이었다. 그는 민간 잠수사였다.
“눈에 안 보이는데, 보여요. 우리는 수중에서 더듬더듬 해서 머리에서 그려진단 말입니다. 한구 한구 모시고 나올 때 그 모습을 눈이 아니라 온 몸으로 모든 걸 다 느껴요. 솔직히 두렵고 도망가고 싶었던 건 사실이에요.”
그는 침몰한 세월호와 함께 바다 속에 잠겨 있는 실종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두 달 가까이 진도 앞바다에서 살았던 민간 잠수사 김관홍씨였다. 고액의 수입이 보장된 산업잠수사로 잘 나가던 그가 본업을 미뤄둔 채 세월호 실종자 수색에 참여하게 된 것은 큰 딸아이가 한 말 때문이었다.
“아빠가 가서 저 사람들 다 구해줘. 아빠는 할 수 있잖아”
잠수사인 아빠는 세 아이들에겐 슈퍼맨이었다. 바다에서 실종된 이들을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아빠밖에 없다고 아이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결심이 서자 그는 지체 없이 팽목항으로 갔다. 2016년 4월 23일이었다. 잠수사 500여명이 투입됐다는 정부 발표와는 달리, 실종자 수색작업에 밤낮없이 매달린 이들은 민간잠수사 20여명이었다. 그들의 실종자 수색작업은 곧 시신 인양작업이었고, 애타게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들의 고통을 잘 알기에 잠수규정도 어긴 채 바다 속으로 계속 뛰어들었다.
“최고 많이 들어갔던게 4번으로 기억나는데, 하루 평균 3번은 들어갔죠. 오로지 물속에 있는 실종자들 위주로 생각했으니까요. 정작 우리 몸 추스를 생각은 못했어요. 가족들이랑 똑같은 마음이었으니까요.”
20여명의 민간잠수사들이 찾아낸 실종자는 300명이 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잠수사들 대부분이 몸에서 이상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김관홍씨 역시 감압챔버에서 의식을 잃는 등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다. 그 후로 잠수를 할 수 없게 됐을 때에도 그는 바지선으로 돌아가 수색작업을 도왔다. 그러던 7월 10일. 태풍으로 잠시 철수했다 바지선으로 돌아온 민간잠수사들에게 기막힌 소식이 전해졌다. 해경에서 철수를 통보한 것이다. 수색방식을 변경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직 실종자가 11명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그동안 해온 잠수사들의 방식이 잘못됐다는 비판까지 받아야 했던 민간잠수사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해경에선 이후 민간잠수사들의 치료와 보상을 약속했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간 민간잠수사들은 잠수병과 후유증 때문에 현업에 복귀하지 못했지만 약속했던 보상도, 치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수색작업 도중 동료잠수사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해경은 최고참 민간잠수사 공우영씨를 과실치사 혐의로 고발했다. 영웅대접도 필요 없고 상식적인 처우만 바랐을 뿐이었는데, 국민으로서 외면할 수 없어 세월호 수색작업에 자발적으로 뛰어든 민간잠수사들에게 돌아온 건 비난과 범죄자 취급이었던 것이다. 김관홍씨는 자신들이 해온 모든 일들이 부정당하는 것을 몹시 견딜 수 없어 했다. 이미 잠수병과 후유증으로 더 이상 잠수 일을 할 수 없게 됐을 뿐 아니라, 트라우마로 우울증과 불면증에까지 시달리고 있었던 그였다. 그는 밤에 대리운전 일을 하면서 고달픈 가장의 삶을 이어갔고, 시간이 나는 대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하는 일을 돕는 등,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려고 애썼다.
그러면서도 유가족들에게는 자신이 세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도, 자신이 겪고 있는 속상하고 막막한 상황을 결코 내색하지 않았다고 한다. 되려 11명의 실종자를 남겨두고 철수해야 했던 것에 대해 몹시 미안해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6월 중순. 믿기 힘든 소식이 전해졌다. 한 남자가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였다. 그는 슈퍼맨 김관홍 잠수사였다. 그를 못견디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외치고 호소해도 책임지려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고만 하는 현실의 높은 벽이었을까? 그가 작년 12월 세월호 청문회에서 했던 말이 새삼 가슴을 울린다.
“고위 공무원(책임자)들에게 묻겠습니다. 저희는 그 당시 다 생각이 나요. 잊을 수 없고 뼈에 사무치는데, 왜 모르고 왜 기억이 안나는지...?”
세 아이에게 슈퍼맨이었던 아빠,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도 슈퍼맨이었던 민간잠수사, 故 김관홍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가 겪었던 절망의 벽과 보이지 않는 희망과 나아지지 않는 현실까지도 남아있는 우리가 기억해야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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