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좀비의 기원

최순욱

발행일 2016.07.27. 15:10

수정일 2016.07.27. 17:27

조회 1,185

좀비를 소재로 한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부산행] 다만, 이 영화에서 묘사된 좀비의 모습은 그 기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좀비를 소재로 한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부산행].
다만, 이 영화에서 묘사된 좀비의 모습은 그 기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최순욱과 함께 떠나는 신화여행 (39) 살아있지만 꿈도, 희망도 없다 - 좀비

조만간 1,000만 관객 영화가 하나 더 등장할 조짐이다. 지난 20일에 개봉했던 연상호 감독의 신작 <부산행>이 개봉 일주일 만에 관객 600만 명 고지를 손쉽게 돌파했다고 한다. 지금 추세로는 이 영화가 국산 영화로는 열네 번째(외화까지 포함하면 열여덟 번째), 그리고 2016년의 첫 1,000만 돌파 영화가 되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이 관객들과 영화 관계자들의 큰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는 데에는 아무래도 ‘좀비’를 소재로 한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라는 점이 강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면서 강한 공격성을 갖고 있는, 그러면서도 인간과 어느 정도 비슷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몸은 부패해 가는 중인 수많은 괴생명체(?)들로 인해 일어나는 아수라장 같은 상황과 이에 대처하는 나약하고 이기적인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매우 속도감 있게 묘사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산행>(과 다른 좀비 소재의 영화들)에서 묘사되는 좀비의 모습은 그 기원하고는 사뭇 동떨어져 있다. 원래 좀비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유래해 서인도 제도(특히 아이티)와 미국 남부지역(특히 루이지애나)로 전파돼 성행한 종교인 부두교(voodoo) 전설이나 주술에 등장하는 ‘부활한 시체’를 말한다. 호웅간, 또는 보커라고 불리는 부두교의 주술사가 인간에게서 영혼을 뽑아냄으로써 신체적 능력은 유지하고 있지만 지성이 상실돼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기만 하는 좀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듣기에는 황당무계하지만 하버드 대학의 민속식물학자 웨이드 데이비스가 아이티 지역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좀비 제작 과정을 참여관찰을 통해 충실하게 연구한 적도 있다. (웨이드 데이비스의 저서는 국내에 <나는 좀비를 만났다>라는 이름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사회학이나 문화인류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꼭 읽어보길 바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호웅간은 먼저 조금이라도 먹을 경우 바로 요단강 익스프레스를 타게 되는 강력한 독을 멀쩡한 사람의 피부에 발라 가사상태에 빠뜨린 후, 독의 약효가 풀릴 때쯤 독말풀 등이 들어있는 또 다른 약물을 먹이고 지독하게 두들겨 패 정신을 마비시켜버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두 차례의 약물주입과 한 차례의 폭행을 당한 사람은 죽은 것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혼이 빠져버린 것처럼 되기 때문에 호웅간이 좀비를 노동자로 팔아버리는 일도 흔했다고 한다.

첨언하자면, 웨이드 데이비스는 충실한 관찰과 인터뷰를 통해 이런 좀비화 주술이 단순한 폭력, 범죄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가 보기에 호웅간의 좀비화 의식은 오랜 식민지 지배와 독립 이후에 벌어진 극도로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에서 나름의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려는 사회적 제제의 하나다. 물론 실제로 죽은 자를 되살려 낸 것이 아니기에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몸이 썩어가는 일이나 보통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또한 좀비는 주술로 하나씩 만들어지기 때문에 무는 행위나 바이러스, 박테리아를 통해 전염되는 일도 없다.

개인적으로는 요새 이런저런 대중문화 작품 속에서 묘사되는 좀비들보다는 부두교 주술과 전설 속의 좀비가 훨씬 으스스하게 느껴진다. 극도의 정신적 충격과 육체적 압박을 통해 살아있지만 아무런 의지도, 열정도, 생각도, 희망도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 죽어서 몸이 썩어가는 것보다 훨씬 비참하지 않은가. 그리고 사람들이 이른바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팍팍한 세상에서 먹고 살기에 급박해 분노해야 할 사안들에 대해 스스로가 무감각해지고 있음을 문득 느낄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우리들은 분노하고 해명을 요구해야 할 어처구니없는 일들로 과도한 정신적 폭행을, 그것도 지속적으로 당함으로써 이미 좀비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최순욱 #신화여행 #좀비 #부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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