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멀리 보려는 욕망, 신화로 엿보다

최순욱

발행일 2016.07.20. 13:24

수정일 2016.07.20. 16:25

조회 2,140

북유럽 신화의 신 헤임달은 밝은 눈과 귀로 침입자가 있는지 항상 감시한다. 신화 시대의 레이더다.ⓒWikipedia

북유럽 신화의 신 헤임달은 밝은 눈과 귀로 침입자가 있는지 항상 감시한다. 신화 시대의 레이더다.

최순욱과 함께 떠나는 신화여행 (38) 기술로 현실화되는 멀리 보려는 욕구

인간은 오래 전부터 감각기관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멀리 보고 더 작은 소리를 들으려는 욕구를 끊임없이 불태워왔다. 세계 각지의 신화나 전설, 민담 등에서 이런 점이 확인되는데, 특히 북유럽 신화에서는 이런 욕구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어 흥미롭다.

첫 번째는 신들의 왕 오딘만이 앉도록 허락된 ‘흐리드스칼프’라는 의자다. 이 의자에 앉으면 우주를 구성하는 아홉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의자에 앉아 포도주를 마시면서 세계가 멸망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지 관찰하는 것은 오딘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두 번째는 역시 오딘이 거느리고 있는 두 마리 까마귀다. 각각 ‘후긴(생각)’과 ‘무닌(기억)’이라는 이름의 이 새들은 아침에 오딘의 어깨에서 날아올라 온 세상을 관찰 한 후 저녁에 돌아와 오딘의 귀에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속삭인다고 한다. 오딘이 흐리드스칼프에 앉아 있지 않을 때에도 세계를 감시할 수 있는 것은 이 까마귀들 덕분이다.

세 번째는 신들의 나라를 지키는 파수꾼 신 ‘헤임달’이다. 오딘과 아홉 파도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눈과 귀가 어찌나 밝은지 세상 끝까지 볼 수 있을뿐더러, 양털이 자라는 소리와 새싹이 돋아나는 소리까지 모두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잠도 새처럼 적게 자기 때문에 눈과 귀가 쉬는 경우도 거의 없다. 이런 비상한 능력 덕분에 그는 신들의 나라에 수상한 자가 침범하지 않는지 감시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좀 더 후대의 이야기에도 인간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의 일을 보고 들으려는 열망은 여전히 강하게 나타난다. 다만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수단이 신이나 동물의 개인적 능력과는 달리 좀 더 구체화된 ‘도구’로 나타난다는 점이 중요한 차이점이다. 독일 지역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법 거울이나, 각종 전설이나 민담에 등장하는 마법사나 마녀들이 멀리 떨어진 곳을 보기 위해 사용하는 수정구슬 등이 이런 사례들이다.

이처럼 오래된 인간의 멀리 보려는 욕구는 기술을 통해 끊임없이 현실화되어왔다. 멀리 볼 수 있게,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주는 도구 역시 유구한 발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작게는 안경과 망원경이 크게는 인공위성이 그런 사례들이며, 최근 정부의 경북 성주 배치 결정으로 커다란 사회적 논란을 빚고 있는 레이더 ‘싸드(THAAD: 종말고고도지역방어체계)’ 역시 여기에 포함된다. 날아오는 탄도탄을 40km 이상의 고고도 상공에서 요격하는 것이 싸드의 임무인데,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탄도탄을 먼저 보아야만 하니 이를 위한 고성능 레이더(X-Band 레이더)가 싸드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싸드의 핵심은 미사일 요격이 아니라 레이더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신의 능력이나 전설 속 수정구슬처럼 인간의 욕구를 높은 수준에서 실현시켜 주는 도구들은 항상 그것을 갖지 못했거나, 그런 능력을 독점했던 사람들의 우려를 낳는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싸드 배치에 반대하고, 좁게는 성주 지역 사람들, 넓게는 전체 국민 중 상당수가 싸드 배치로 나타나게 될 결과를 걱정하고 이유 중에도 그런 것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싸드 배치가 국익에 부합하는지, 국방력 강화에 꼭 필요한지, 주변국과의 불필요한 긴장만을 야기시키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 판단할 만한 충분한 능력과 정보를 갖추고 있지 않다. 다만 이런 중차대한 문제가 충분한 논의 없이, 너무 급박하게 결정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부터라도 충분한 소명, 해명, 설명을 통해 이런저런 사람들의 의문을 해소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순욱 #사드 #신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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