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을 알면 글쓰기가 보인다
강원국
발행일 2016.07.18. 15:00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39) 심리학으로 배우는 글쓰기
인류가 아니라 한 인간에 관해 써라
2007년 미국 심리학자 폴 슬로빅(Paul Slovic)은 ‘기부에 관한 인간 심리’를 실험했다.
A그룹에는 “말라위에서 기아로 죽어가는 300만 명의 아동을 위해 기부해 달라.”는 메시지를 던졌고, B그룹에는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일곱 살 말라위 소녀 로키아를 위해 기부해 달라.”고 했다.
B그룹의 기부금이 두 배 이상 많았다.
사소함의 힘이다.
스탈린은 이렇게 말했다.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
글쓰기도 그렇다.
거창한 것, 추상적인 것보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것,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쓰자.
개념어를 사용하지 않고 관념적으로 쓰지 않는다.
‘나무’ 보다는 ‘마을 어귀에 서있던 버드나무’가 낫고, 그 보다는 ‘어렸을 적 마을 어귀에서 어른들이 개를 매달아 잡던 버드나무’가 더 낫다.
이론 말고 실제, 의도 말고 실행, 원칙 말고 실천 내용을 쓴다.
교육 문제에 관한 글을 쓰려면 ‘내 아들딸’을 떠올리고 거기서 답을 찾는다.
모델링 기법을 활용한 베껴쓰기
1963년 캐나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와 그의 동료들은 5세 전후의 아이 앞에서 보보인형을 때리거나 집어 던지는 모습을 되풀이 했다.
그 결과 아이는 혼자 놀 때도 이런 공격적 행동을 보였다.
유명한 ‘보보인형 실험’이다.
사람은 누구나 모델이 되는 사람의 사고와 행동을 모방하고자 한다.
이러한 ‘모델링’은 집중, 기억, 행동, 동기라는 네 가지 기제로 작동한다.
모델링은 글쓰기에도 활용할 수 있다.
바로 ‘베껴쓰기’다.
1. 모델이 되는 작가의 글을 읽는다. (집중)
2. 읽은 내용을 요약하거나 주제를 파악해본다. (기억)
3. 필사한다. (행동)
4. 모델 작가처럼 쓰고 싶다는 열정을 불태운다. (동기)
대화와 토론으로 글쓰기
1990년대 초 캐나다 맥길대 심리학과 케빈 던바(Kevin Dunbar) 교수는 실험실 네 곳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는 곳을 추적하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획기적인 발견이 나오는 장소는 실험실 현미경 앞이 아니었다.
여러 실험실 연구원들이 모이는 휴게실이었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
대화와 토론이 혁신적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원천이었던 것이다.
글을 쓰다 막히면 누군가를 찾아가 대화를 나눠보라.
“이런 내용을 써야 하는데 여기까지 밖에 못썼다. 다음은 무슨 내용을 써야할지 모르겠다.”고 얘기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게 된다.
부서 안에서 중요한 문서를 작성할 일이 생기면 모여서 토론해보라.
기대하지 않았던 아이디어가 틀림없이 나올 것이다.
나만 알고 남은 모르는 것을 쓰자
1955년 심리학자 조셉 러프트(Joseph Luft)와 하리 잉햄(Harry Ingham)은 사람의 마음에는 네 가지 창이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의 이름을 딴 ‘조하리의 창’이다.
나도 알고 상대방도 아는 ‘열린 창’,
나는 알고 있지만 상대방이 모르는 것이 ‘미지의 창’,
나는 모르는데 상대방이 아는 ‘장님의 창’,
나도 상대방도 모두 모르는 ‘암흑의 창’이다.
‘열린 창’과 ‘암흑의 창’은 글쓰기에서 관심 밖이다.
나도 알고 독자도 아는 내용은 흥미로운 얘기일 수 없다.
나도 모르고 독자도 모르는 내용은 쓸 수 없다.
글쓰기에서 주목해야 할 영역은 ‘미지의 창’이다.
나는 알고 있지만 독자가 모르는 부분이다.
내가 알고 있으니 쓸 수 있고, 독자는 모르니 흥미로울 수 있다.
그것은 이야기일 수도, 사실이나 해석, 이론일 수도 있다.
많이 써야 잘 쓴다
심리학자 딘 키스 사이먼튼(Dean Keith Simonton)는 어떤 유형의 과학자가 탁월한 논문을 쓰는지 조사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큰 영향을 미친 논문은 질적으로 우수한 과학자가 아니라, 양적으로 논문을 많이 쓴 과학자에게서 나왔다.
이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사이먼튼 교수는 ‘가능성 동등의 법칙’을 제시했다.
과학자들이 쓰는 논문 가운데 어느 것이 파급효과가 클지는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논문은 성공 가능성이 동등하다.
결국 확률의 문제가 된다.
발표 논문의 수가 많을수록 훌륭한 논문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양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질이 바뀐다.
어느 지점까지는 양이 쌓여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다가, 어느 순간 비약적 발전과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반대로, 질적인 변화는 양적인 축적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글을 많이 쓰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
찰스 다윈은 많이 써놓고 줄이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했다.
몇 개의 글만 써놓고 그것을 완벽하게 다듬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몽땅 써놓고 그 가운데 좋은 것을 추리는 것이 낫다.
뿐만 아니라 많이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에 '글쓰기 패턴'이 생긴다.
어떻게 써야 하는지 깨우치는 순간이 온다.
무엇을 어떻게 깨우쳤는지 설명할 순 없지만, 분명히 그 이전과 다른 상태가 된다.
양이 질로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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