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그런 동물이 아니야~

최순욱

발행일 2016.07.13. 14:30

수정일 2016.07.13. 15:30

조회 931

일본 신화의 견신 이누가미. 인간에게 이런저런 해코지를 하는 개의 귀신이다ⓒWikipedia

일본 신화의 견신 이누가미. 인간에게 이런저런 해코지를 하는 개의 귀신이다

최순욱과 함께 떠나는 신화여행 (37)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졸지에 개, 돼지가 됐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의 99%가 모두 손에 손을 맞잡고 개, 돼지가 됐다. 우리 모두를 한꺼번에 짐승으로 만들어버린 공무원 양반께서는 파면이 된다고는 하는데, 그걸로 뭐 달라질게 있는가 싶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무려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될 정도인데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 드글드글하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헌데, 이 양반은 개와 돼지에 대해 뭔가 단단히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개는 권력을 가진 사람(주인)에게 무조건적으로 충성하고 돼지는 밥만 먹을 수 있으면 행복해한다’는 생각으로 99%는 개, 돼지라고 한 것 같은데, 애석하게도 개나 돼지는 절대 그런 동물이 아니다. 오늘은 일단 개에 대한 오해를 좀 바로잡아볼까 한다.

개는 약 1만~4만 년 전쯤에 인간이 길들인 최초의 동물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인간과 오랜 세월을 지낸 이후에도 여전히 늑대와 매우 유사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인간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자연에 방사될 경우 곧바로 무리를 지어 늑대와 유사한 생존본능을 보인다. 심지어 늑대와 교미해 새끼를 낳는 것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개는 현재 인간이랑 어울려 사는 것이 안전하고 편리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일 뿐, 자신의 안위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언제든지 반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잠재적 기질을 갖고 있다.

이 때문인지 세계 각지의 신화나 전설 속에 등장하는 개를 모티브로 한 존재는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경우가 많다. 북유럽 신화의 가름(Garmr)은 죽은 자의 세계인 니플헤임을 지키는 지옥의 개인데, 생김새는 보통 개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가슴이 온통 피로 붉게 물들어 있다고 전해진다. 온 세계가 멸망할 때 전쟁, 법, 용기의 신 티르와 싸우다가 함께 숨을 거둔다. 그리스 신화에도 지하세계의 문을 지키는 수문장으로 케르베로스라는 머리가 셋 달린 개가 등장하는데, 워낙 사나운지라 일반적으로 죽지 않은 상태에서 이곳을 찾은 영웅들은 케로베로스의 입에 떡을 물려 짖거나 물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영국과 관련된 지역에도 주로 죽음과 관련된 초자연적 개에 대한 이야기가 여럿 전해진다. 예를 들어 가이트래시(Gytrash)는 잉글랜드 북부에서 전승되는 검둥개인데, 혼자서 길을 따라 출몰하면서 나그네를 잘못된 길로 이끌어 길을 잃게 만들거나 죽음에 이르게 한다. 샬롯 브론테의 소설 <제인 에어>에서도 주인공 제인이 어떤 남자의 개를 보고 가이트래시를 떠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스코틀랜드에는 쿠시(Cù Sìth)라고 하는 개 요괴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는데, 송아지만한 덩치의 늑대와 같은 모습을 하고 망자의 영혼을 사후세계로 끌고가는 죽음의 예고이자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집트 신화 속 개 머리를 한 망자의 신 아누비스, 일본에서 전해지는 사람에 붙어 여러 가지 해코지를 하거나 저주를 내리는 개의 귀신인 견신(犬神, いぬがみ) 등도 역시 죽음, 공포 등과 관련된 개의 이미지들이다. 이런 이야기에서 주인에 대한 충성 따위의 요소는 찾아보기 어렵다.

“민중의 99%는 개, 돼지” 따위의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싶다. 개를 얕잡아 보다간, 낮춰보다간, 만만하게 보다간 조만간 분명히 큰 코를 다치게 될 거다. 옛날 사람들은 이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개는 늑대의 후손이다. 우리 99%들도 마찬가지다.

#최순욱 #신화여행 #개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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