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로 산다는 건 이런 걸까?
최경
발행일 2016.07.08. 13:50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30) 부부로 산다는 것 2편 - 신열부전
살면 살수록 참 흉흉한 일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보고 듣고 겪는 일들이 많아져서인지, 아니면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흉폭해진건지 모르겠지만 특히 가족끼리 일어나는 범죄, 부모가 어린 자식을 학대하거나 죽이고, 반대로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또 남편이 아내를, 혹은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는 사건들이 넘쳐난다. 가족 공동체, 마을 공동체가 무너져버린 현대사회가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문제인 걸까.
그런데 어느 바닷가 마을에 믿기 힘든 이야기를 37년째 이어가는 부부가 있다. 이른 새벽 그 집에선 어김없이 밥 짓는 소리가 들린다. 부엌에서 익숙한 손놀림으로 도마소리를 내고 있는 이는 77세의 할아버지다. 반찬을 만들다가 뭔가 부족한 것 같으면 방쪽을 향해 물어본다.
“고춧가루는 조금 많이 넣어도 되지?”
방안에서 이것저것 요령을 일러주는 이는 할머니. 백발을 한 채 앙상하게 마른 몸으로 반듯이 누워 있는 할머니는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온몸이 굳어 손가락조차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30대에 시작된 병으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게 됐고 37년을 남편의 병수발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아픈 아내를 대신해 그동안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해왔고, 아들 3형제를 키워냈다고 한다. 매일 아내를 씻기고 닦이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것이 할아버지의 일상이다. 그런 정성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병은 계속 악화돼 7년 전부터는 시력까지 거의 잃은 상태였다. 말이 37년이지, 실제로 그 세월이 어디 쉬웠을까. 남들 같으면 진작 포기하거나 내치거나 도망갔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대체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들을 한결 같이 아내 곁을 지켜온 것일까?
“말이 그렇지, 내 마음 속에서 한결 같았겠어요? 마음속에 약간의 굴곡은 있었지요. 그래도 겉으론 표현을 절대 안했지. 표현하면 아내가 얼마나 미안하고 고통스럽겠어요. 몸도 아픈데.”
이들 부부의 동화 같은 삶은 마을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하나같이 대단하다며 혀를 내두른다.
“한 마음으로 하는 거 보면 진짜 본받을 사람이에요.”
하루에 한번 찾아와 도움을 주고 있는 요양보호사는 이 노부부를 6년 동안 지켜보며 새삼 부부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돼야 하는지 새삼 느꼈다고 말한다.
“몸은 둘인데 저 분들은 마치 한 몸 같아요. 머리는 어머님이 다 하시고, 팔다리는 아버님이 다 하시고요. 저렇게 누워계셔도 어머님이 살림을 꿰뚫고 계세요. 그만큼 대화를 많이 하시는 거죠. 부부가. 여느 가정집 어머니들 생활하시는 거랑 똑같아요.”
할아버지의 건강도 예전 같지 않다. 몇 년 전엔 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데 그걸 때마다 잊지 않게 챙겨주는 건 누워있는 할머니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시계를 볼 수 없는데도 할머니는 정확하게 때를 알고 약 먹을 시간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아프니 더욱 아내 생각이 났었노라고 했다.
“병원에 입원해서 혼자 밥을 먹으려니까 밥이 안 넘어가더라고요. 집사람 생각이 나서요. 다음 세상엔 아내가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아들 결혼식에도 같이 가고 여행도 같이 다니고 좋은 세상 같이 봤으면 싶어요.”
비록 젊어서부터 건강을 잃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처지지만 할머니는 이런 남편을 만나서 한없이 행복했고 여한이 없다는 할머니. 남은 소원은 단 하나라고 했다.
“영감에게 좋은 친구가 되는 거예요. 남은 할 일은 그것 밖에 없어요.”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60대 10명중 7명은 황혼이혼에 공감했다. 은퇴부부가 하루에 배우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평균 4시간 정도라고 한다. 10명 중 4명 정도는 이 시간을 줄이고 싶다고 답했다. 이런 세태 속에서 37년의 세월동안 24시간을 함께 해온 이 바닷가 마을 노부부의 이야기는 소설에나 나오고 옛날이야기에나 나오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분명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이 흉흉한 이야기들이 판치는 세상에, 마음이 각박해지는 일상 속에 ‘부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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