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37) 인용 방법만 익혀도 글쓰기가 쉬워진다
<대통령의 글쓰기>를 쓸 때다.
퇴고까지 마쳤다.
그런데 왠지 허전하다.
서초동 국립도서관에 갔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검색해보니 70여 권쯤 된다.
닷새 동안 전부 다 봤다.
목차만 보고 내가 써놓은 글과 관련 있는 내용이 없으면 ‘통과’
관련 있는 내용, 그러니까 내가 찾는 것은 인용거리였다.
헤밍웨이나 톨스토이 같은 사람의 권위가 필요했다.
글쓰기에 관한 그들의 조언, 즉 명언을 찾은 것이다.
명언뿐만 아니라 짤막하고 재밌는 일화도 베껴 썼다.
책이 나오고 많은 서평, 독후감이 올라왔다.
그 가운데 내가 가져다 쓴 ‘인용구’를 재인용한 분들이 많았다.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인용 문구를 인상 깊게 본 것이다.
명언이 명언인 이유가 있다.
은연중에 자신도 언젠가 써먹고 싶었으리라.
인용을 글쓰기 무기로 활용
신문, 잡지 기사처럼 인용을 잘 활용하는 글도 없다.
전체 내용의 1/3 가까이가 인용이다.
특히 전문가 의견을 인용한 일명 ‘쿼트’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독자는 정보를 원한다.
정보가 누구의 것인지는 관심 없다.
필요한 정보면 된다.
그러나 글 쓰는 사람은 정보가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
그럴 필요 없다.
굳이 자신의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면 된다.
인용을 주저하지 말자.
내 것만으로는 쓸 말도 많지 않다.
학위 논문을 보면 알 수 있다.
인용 반, 자기 것 반이다.
책이나 칼럼, 기사를 인용하는 것은 물론, 인터뷰를 해서 남의 말을 인용하자.
출처만 정확히 밝히면 된다.
자신이 완벽하게 소화한 것은 굳이 그럴 것도 없다.
이미 자기 것이니까.
몽테뉴도 그랬다.
“꿀벌은 이 꽃 저 꽃에서 꿀을 얻지만, 꿀은 꽃의 것이 아니라 꿀벌의 것이다.”
인용이 주는 혜택과 인용 종류
인용은 분량을 책임진다.
명언, 격언, 예시, 사례, 통계, 이론, 책과 영화 내용, 신문기사, 우화, 신화, 고사 등 인용거리는 많고도 많다.
하지만 과도하면 곤란하다.
자기 시각이나 관점 없이 인용만으로 일관한 글은 공허하다.
인용은 남의 권위를 빌려옴으로써 글의 설득력도 높인다.
뿐만 아니라, 내가 전하고자 하는 뜻을 보다 선명하게 해주기도 한다.
누구나 아는 대로, 인용에는 직접인용과 간접인용이 있다.
직접인용은 인용한 내용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경우이고, 간접인용은 문장 속에 숨겨 인용하는 경우이다.
따라서 직접인용은 작은따옴표(‘ ’)나 큰따옴표(“ ”) 같은 인용부호를 사용하지만, 간접인용은 인용부호 없이 문장 속에서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예를 들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루카스는 “‘경제는 심리다’라며 소비심리와 투자의욕을 강조했다."
이렇게 쓰면 직접인용이다.
같은 문장을 이렇게 바꿀 수도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루카스는 경제야말로 심리이므로 소비심리와 투자의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것은 간접인용이 된다.
인용 사실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면 직접인용을 쓰는 것이 좋고, 부드럽게 풀어쓰고자 한다면 간접인용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직접인용도 아니고 간접인용도 아닌, 어중간한 인용은 틀린 문장이 된다.
1. ‘경제는 심리다’라며 (직접인용)
2. 경제는 심리라며 (간접인용)
3. 경제는 심리다며 (틀린 문장)
내가 활용하는 인용 방법 3가지
첫째, 인용 문구를 암기해뒀다 쓰는 방법이다.
검색을 통해 인용 문구를 찾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머릿속에 인용구를 갖고 있으면 글쓰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래서 제안한다.
인용구를 30개만 외어서 자신의 글쓰기 무기로 활용해보라.
일단 외어놓으면 글 쓸 때 요소요소에서 떠오르고 요긴하게 쓸 수 있다.
나는 니체의 ‘풍파는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를 자주 쓴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좋아했던 문구다.
거의 어떤 글에도 쓸 수 있을 만큼 유용하다.
인용 문구를 굳이 외우기 싫다면, 인용할 만한 문구를 볼 때마다 메모해두는 습관을 가져보자.
참고로, 인용은 고전에서 하는 게 폼이 난다.
둘째, 남의 말을 그대로 옮겨 인용하지 않고, 내 것으로 고쳐서 인용하는 방법이다.
발췌가 아니라 흉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연설문을 쓸 때마다 어록을 찾아봤다. 김대중이란 거인의 글을 보좌할 수 있는 힘이 거기서 나왔다. 나는 난장이였지만 거인의 어깨 위에 무동을 타고 있었다.”
<대통령의 글쓰기> 76쪽
이 대목은 뉴턴의 말,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그것은 거인의 어깨에 서있기 때문에 가능했다.”에서 따왔다.
일종의 패러디다.
노래로 치면 같은 악보에 다른 가사를 붙이는 격이다.
고상하게 말하자면 리메이크이다.
원전에 대한 존경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오마주다.
본뜬 것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표절과는 구분된다.
세 번째 방법은 인용이 아니라 창조에 가깝다.
기존 것을 참고한다는 점에서는 인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글쓰기에 관해 글을 쓰려고 할 때, 글쓰기 책을 참고하기 보다는, 심리학이나 뇌과학 이론을 참조하려고 한다.
글쓰기 책이 텍스트라면, 심리학이나 뇌과학 책은 콘텍스트에 해당한다.
글쓰기는 인간 심리나 뇌 작용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글쓰기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출처를 밝히지 않고 인용하면 표절이다.
그러나 심리학이나 뇌과학의 이론을 가져와 글쓰기에 접목하면 새로운 창조다.
일종의 융합이고 고도의 인용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나는 인용을 통해 1.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견을 소개함으로써 글의 분량을 채우고 설득력을 높이는 효과를 얻거나, 2. 멋있는 표현을 만들고, 3. 새로운 관점과 시각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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